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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준거 관점에서 이순신 장군의 전략적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자원준거란 경쟁우위는 적절한 수준의 물질적 자원과 월등한 인적, 조직적 자원에서 온다는 개념이다. 자원준거 이론은 개별기업이 지니고 있는 상이함이나 독특함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자사의 강점 혹은 약점으로 인식되는 것을 경영 자원으로 정의하면서 이의 효과적인 배분을 토대로 한다. 기업으로 따지면 기업 내부의 물리적 자산 인적자본, 조직의 일상성과 프로세스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기업의 목표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1].

물질적, 인적, 조직적 자원이라고 해서 모두 지속적 경쟁 우위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핵심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가지는 자원들은 다음 네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치, 희소성, 대체 자원의 부재, 불완전한 모방 혹은 불가능성이 그것이다. 핵심 자원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효과성과 효율성에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가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희소성이 있어야 하는데 자원에 따라 가치는 있지만 희소성이 없는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희소성이 없다면 여러 기업들이 접근을 할 수 있게 되므로 경쟁력이 떨어진다. 다음으로 경쟁자들이 같은 전략적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대체 자원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쟁 우위를 가져다 주는 자원은 다른 기업이 모방할 수 없거나 모방하더라도 완전히 모방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2]. 이순신 장군의 승리 원인을 이런 자원준거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뛰어난 전술 (희소성 있는 자원)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전선(戰船)은 전투를 수행할 병력을 나르는 수송 수단에 불과했고, 실제 전투는 전선에 탑승한 전투원들이 상대방의 배로 건너가 배를 점령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왜의 수군을 상대로 승리는 고사하고 대등한 전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전선의 수나 병력 수에서 차이가 나는 상황이었다. 설령 같은 수의 전선과 병력이 있다 하더라도 임진왜란 전 부터 수십년간 칼과 창으로 근접 전투를 경험한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 경험이 전혀 없었던 조선 수군이 승리를 얻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이 선택한 방법은 왜군에게 유리한 근접 전투는 피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장거리 전투 위주로 전쟁을 치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근접 전투를 해야 한다면, 거기에 유리한 배를 만들어 전투를 하는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이런 의도는 23전 23승이라는 전투 결과로 극명하게 나타났다. 우선 조선 수군은 천자(天子), 지자(地子), 현자(玄子), 황자(黃子)와 같은 다양한 구경의 대포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왜군을 공격했고, 근접 전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판옥선에 판자로 지붕을 덮고 왜군들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지붕에 쇠못을 거꾸로 촘촘히 단 거북선을 투입했다. 배 위에서의 근접 전투에만 익숙하던 왜군에게 이런 방식의 전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낮선 전투 방식이었다. 먼 거리에서는 조선 수군의 강력한 화포가 문제였고 근거리에서는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었던 거북선이 문제였다. 이런 이순신과 거북선 앞에 왜군은 엄청난 공포와 충격을 받았고, 이에 대한 두려움은 이순신을 만나면 전쟁을 피하라는 군령을 내릴 정도였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사실상 대부분의 전투에서 궁지에 몰려서 싸운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길만한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 싸웠던 것이고, 일본은 자신들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잃어버리고 이순신 장군이 원하는 형태로 싸워 전쟁에 패하게 된 것이다[3].

집중, 경계 탁월 (대체 불가능한 자원)


강영오(姜永五) 예비역 제독은 이순신 장군이수행한 전투에서 현대 해군 교리에서 확립된 전쟁의 원칙들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고분석한다. 이순신 장군의 가장 큰 승리 비결은 집중의 원칙 덕택이었지만 경계의 원칙에서도 철저했다. 경계는 기습을 방지하고 아군에 대한 적의 탐지 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아군 전투력을 보존하고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순신 장군은 주도 면밀한 경계 활동으로한번도 일본 수군의 기습을 허용치 않았다. 해양통제권 확보를 위해 적선 격파에 집중했을 뿐 전과 과시를 위해 중시되던 적 머리를 베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목표의 원칙 준수 사례다. 이순신 장군이 치른 첫 번째 전투인 옥포 해전은 적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기습을 성공시켜 기습의 원칙이 적용된 사례를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은 함포전(艦砲戰) 위주로 전투를 수행했다. 함포전에서는 T자 형태로 적을 압박하는 대형이 필수적이다. 아군은 화력을 집중하고 적은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05년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東鄕平八郞) 제독이 러시아 함대를 대파했을 때나 영국의 넬슨 제독이 사용한 대형도 모두 이 T자형 전술이다. 강제독은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해전에서 구사한 학익진법이나 명량 해전의 전투 대형은 이러한 T자형 전술을 성공적으로 구사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거시적 전쟁 원칙뿐만 아니라 미시적 전술 구사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능력을가지고있었던것이다. 전쟁은 실제 전투에서의 전략·전술뿐만 아니라 정보나 군수 지원에서 싸움의 결과가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정보나 군수 분야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군인으로서 필요한 자질과 철저한 전문성이 이순 신장군이 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것이다. 한편 이순신 장군의 전략·전술적 안목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한 조선 수군의 뛰어난 무기 체계도 승리의 또 다른 밑바탕이 됐다. 조선군 주력 군함인 판옥선(板屋船)은 일본 수군의 주력함인 세키부네(關船)보다 선체가 더 크고강했다. 주력함의 성능에서 조선 수군이 우월했던 것이다. 또 일본군의 주력 무기는 기본적으로 조총(鳥銃)에 불과했지만 조선 수군은 천·지·현·황자 총통 등 각종함포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대포와 소총의 싸움으로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력에 있어 조선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4].

원칙주의 신념


이순신 장군은 하급무사 시절 군 장교로서 또는 자휘관으로써 매사에 원칙에 맞게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려고 하였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원칙에 충실하다가 두번이나 백의 종군이라는 모욕을 당했지만 끝나 후세에 명장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임하는 6가지 원칙으로 임했다. 그 6가지 원칙은 목표에 의한 원칙, 선제 공격 원칙, 집중의 원칙, 기동의 원칙, 사기양양의 원칙, 철저한 경계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는 원칙주의가 상급자나 당시 무능한 임금에게는 건방지거나 반항하는 모습으로 비춰지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마 전장에서 원칙주의는 병사들을 강병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행동의 영향력 생각 (완전모방 불가능한 자원)


전투를 떠나 이순신이 안고 있던 큰 부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이었다. 일본군 패잔병들이 죄 없는 백성들을 유린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당항포 해전에서는 적을 바다에 모조리 수장시키려 한 것이다. 현대전에서도 민간인 보호를 위한 수많은 협약과 교전 수칙 등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목표만을 위해 뛰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생각해 보라.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생각하라. 나의 성과에 급급하여 그것이 타인에게 혹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승자라고 할 수 없었다[5].

힘의 집중 (가치)


이순신이 명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물길이 좁아 아무리 적이 많이 몰려온다 해도 실제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적선은 10여 척 내외로 제한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둘째, 조류의 방향이 아군에게 유리해진다면 쉽게 적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셋째, 적에게 포위될 염려가 없었다. 넷째, 암초가 많은 지형이라 물길을 잘 아는 조선 수군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적 열세의 아군 전력을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이순신은 명량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힘의 집중 원리를 잘 이용한 장군들은 전투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나폴레옹 역시 힘의 집중 원리를 누구보다 신봉하던 정복자였다. 초등학교 시절,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가? 혹시라도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틀림없이 힘이 분산되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지금이라도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전술적으로 힘을 집중해야 한다[6].

참고문헌


[1] 권혁인 et al. "산업 혁신을 위한 서비스모델 개발 전략에 관한 연구." 한국 IT 서비스학회지 9.4 (2010): 238.
[2] "TOP을 위한 전략경영 4.0 – Daum 책." 2013. 30 Oct. 2014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8786359>
[3] "조선 해군과 로마 해군의 비밀 무기 -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2012. 30 Oct. 2014 <http://www.kimst.re.kr/2012html/ebook/201208_03.pdf>
[4] "'집중·경계' 전쟁원칙에 충실했다." 2009. 30 Oct. 2014 <http://pdf.dema.mil.kr/pdf/pdfData/2005/20050426/B200504261201.pdf>
[5] "불패의 리더 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2008. 30 Oct. 2014 <http://sedo.or.kr/board/board_pds/pds_55/D8.pdf?PHPSESSID=43f802ddfe9ddcc2263f0e99a0561fec>
[6] "불패의 리더 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2008. 30 Oct. 2014 <http://sedo.or.kr/board/board_pds/pds_55/D8.pdf?PHPSESSID=43f802ddfe9ddcc2263f0e99a0561fec>